[영화] 조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영화네요(스포 포함)

2019. 11. 3. 08:03놀이

안녕하세요~

 

아내와 친척 결혼식에 갔다 오면서 급하게 잡은 영화 관람에 뭘 봐야 될까 고민도 없이 "조커"를 선택했습니다. 마침 31일에 당첨된 CGV 영화 예매권이 2장 있었습니다. 2008년 연애할 때 본 "다크 나이트"같은 액션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보고 나니 약간은 지루한, 몇 장면 안 되지만 적나라한 살인 장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주인공을 통해 드러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올리지 않았는데, 글을 통해 머릿속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올립니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 보러 간 영화 중 처음으로 줄거리를 보지 않고 간 영화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배트맨 시리즈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니라 2008년에 다크나이트의 조커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완전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제가 잘못 이해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제 생각을 정리 차원입니다. 생각의 흐름에 따라 적어 봅니다.

 

저는 주인공이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면, 혼자 핸드폰으로 보고 있을때면, 일시 정지하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주인공과 같은 감정을 느껴서 도저히 못 보겠습니다. 그런데 영화관은 끌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봐야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123분짜리 영화를 봤습니다.

 

1. 출연진 및 주인공은 누구인가?

헷갈렸던 2분이 있습니다. 머레이 플랭클린(토크쇼 진행자) 역의 '로버트 드 니로', 토마스 웨인(배트맨의 아버지) 역의 '브레트 컬렌'입니다. 서양 사람이 아시아인을 구별 못 하듯이, 저도 구별 못 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야 다른 사람인 걸 알았습니다. 주인공 조커 역의 '호아킨 피닉스'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찾아봤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젊은 황제 역을 했었네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조커는 본명이 '아서 플렉'입니다. 정신병을 앓고 있지만 정부지원을 받아 치료 받으러 다니며,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광대 노릇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려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조커가 대변하는 사회의 약자는 누구일까요? 1. 가정에서 부모에게 학대를 받고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 2. 정부지원으로 간신히 치료받고 있다 지원이 끊긴 사람 3. 알바로 간신히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 4. 밥은 굶어도 꿈이 있어 행복한 사람 5. 직장 내 왕따 6. 도와준 피해자에게 외면당한 사람 7. 총기난사 범인,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렇게 많네요. 이런 경험을 한 아서 플랜 사회에 떠밀려 조커가 된다는 내용인데요. 

 

2. 가정에서 부모에게 학대를 받으며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 한 아이: 환경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가?

어린 아이가 있어서인지 아내는 이 부분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냈습니다. 아빠에게 도를 지나친 폭력을 받고, 정신병을 앓는 엄마에게 돌봄을 받지 못한 입양아 아서 플렉을 결국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게 되고 엄마를 죽이게 됩니다. 속았다는 생각에서였을까요? 아님 엄마를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했을까요? 저는 유영철이 생각났습니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대략적인 내용이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요?"라고 했던 유영철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 부분에 일부 동감을 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나쁘다고 모든 사람이 나쁘게 되는 건 아닙니다. '환경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뭘까요?

 

3. 정부지원으로 간신히 치료 받고 있다 지원이 끊긴 사람: 예산을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까?

아서 플렉은 어릴 때 머리에 입은 외상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정부지원이 되는 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데요. 나중에 보면 상담직원에게 "당신은 내 말을 건성으로 듣는다"는 말을 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거겠지요?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고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얘기를 할 사람, 시간, 장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산이 삭감되어 더 이상 방문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는 국회의원이 생각났습니다. 지역구에서 다시 당선되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 선심성 예산을 따내야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같은 사업을 하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내가 다시 당선되기 위해 지역 유권자의 환심을 사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는 예산은 나의 당선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국회의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큰 일을 하고 싶어도 다시 당선이 되어야 가능하겠지요? 예산을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까요?

 

4. 알바로 간신히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 최저임금은 올려야 할까, 유지해야 할까, 내려야 할까?

최근 몇 년 사이에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습니다. 2019년 8,350원, 2015년 5,580원입니다. 4년 동안 1.49배 올랐습니다. 일본과 우리가 10~20년 차이 난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지는 일본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프리터족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프리터족은 자유롭게 직업은 구하지 않고 알바로만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고 하는데요, 아서 플렉은 생계를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정부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렸는데요.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가는 중일까요?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가는 길일까요? 알바하시는 분들은 알바일이 줄어서 힘들고, 사업하시는 분들은 인건비 부담으로 힘들다고 하니, 서로가 공생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일까요?

 

5. 밥은 굶어도 꿈이 있어 행복한 사람: 시험 공부로만 인생이 결정되는 교육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과거에 어떻게 인재를 등용할 것인가는 엄청난 고민거리였습니다. 세습제를 타파하고 왕권을 강화할 목적이었지만, 과거제를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인재를 선발하는 좋은 제도가 있었습니다. 2차 산업의 노동자를 생산하기 위한 교육제도에서 입시, 입사 시험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험입니다. 그런데, 공부가 적성이 아닌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 시간 낭비만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야든 최고는 0.1% 전후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에 투자해도 최고가 되기 힘든데, 공부만 하고 앉아 있습니다. 들러리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들이 번듯하다고 하는 직업을 갖길 원합니다. 청소원을 보고 부모가 자식들에게 '공부 안 하면 커서 저렇게 된다'하고 한국에서는 말합니다. 외국에서는 '거리를 깨끗이 청소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라고 말합니다. 영화 도입부에 환경미화원분들이 파업을 해서 쓰레기 처리를 못 해 고담시 당국은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청소에 소질이 있고 재미가 있는 사람이면 청소를 하고,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운동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전제 조건이 직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겠지요. 직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마련이 될까요? 아니면 부모가 밥은 굶고 있지만 꿈을 위해 노력하며 행복한 자녀를 보고 있어 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자기 밥그릇은 다 있고, 자기 인생 자기가 산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시지만, 또 자기가 못 이룬 꿈을 자식들에게 투영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자식의 적성을 찾아 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아서 플렉은 꿈이 있어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는 밥은 굶어도 이루고 싶은 꿈이 없습니다. 아이가 저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과학자, 대학교수라고 썼던 국민학교 시절이 떠올랐지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과학자는 당시 국가 정책상 국민학생 대부분이 그렇게 했고, 대학교수는 부모님의 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나의 꿈을 그린 그림이 기억나는데요, 경찰을 그렸는데, 모자챙이 위로 가서 간호사라고 놀림받았던 기억도 납니다. 최근 서울 연세병원에서 남자 간호사 분을 봐서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나는데요. 성별에 따른 직업 구별도 없어지기 시작하나 봅니다. 생각이 바뀌려면 1세대인 30년은 지나야 합니다. 우리 아이 세대는 지금 부모세대의 삶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꿈을 찾아 주고 이룰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주고자 합니다.

 

6. 직장 내 왕따: 피해자는 도움을 받지 못 했을 때 살인으로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옳을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최근 시행되었습니다. 요즘 회식 문화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귀국 후에 보니 술은 안 먹네요. 몇 년 전만 해도 술을 강권해서 술 1잔에도 힘든 저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분위기에서 적당히 주량대로 마시니 엄청 좋습니다. 직장 생활 한 14년 되니 위치가 올라와서, 강권하는 사람들이 적어져서 그럴까요? 그렇다고 제가 술을 강권하지는 못 합니다. 주량이 약해서이죠. 아서 플렉은 직장 내에서 배신 같은 것을 당합니다. 직장 동료가 총을 주니깐 받았는데요, 나중에 직장동료가 아서 플렉이 총을 달라고 했다고 증언합니다. 결국 가위로 잔인하게 찔러 죽이는데요. 같이 집에 있던 다른 동료는 죽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자기에게 유일하게 잘해 줬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직장 내에서 역할이 분담된 것이지 누가 상전이고 하전인 것이 아니잖습니까? 퇴직하면 동네 아저씨고, 제대하면 동년배일 뿐입니다. 많이 당했던 군대 후임과 며느리가 악독한 선임과 시어머니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심리학 책에서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권불십년입니다. 아무리 권력가라도 10년을 못 갑니다. 있을 때 잘 하라라는 것이 내가 있을 때 잘해 달라는 것과 내가 권력이 있을 때 아랫사람들에게 잘하라는 이중의 뜻이 될 수 있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검색하다 보니 막내가 상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네요. 직장 내에서 자기 맡은 역할만 잘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 생각하고 서로 안 건드리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만약 피해자가 주위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 살인으로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옳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학교 폭력 대응을 보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가해자도 좋게 변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을 미비합니다. 아이 아빠로서는 아이가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만, 선택하라면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이에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사회에서는 피해자 인권보다 범인의 인권이 더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사회가 힘을 모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노력하는 중이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있습니다.

 

7. 도와 준 피해자에게 외면당한 사람: 피해자를 도와준 사람은 과연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아서 플렉이 지하철에서 본의 아니게 희롱당하고 있는 여성 분이 상황을 벗어 날 수 있게 해 줍니다. 대신 자기가 3명에게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순간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3명을 죽여 버리는데요. 이 사건이 시위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됩니다. 죽은 3명은 부자이고 광대 분장을 하고 있던 아서 플렉은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게 되는 거죠. 지하철 살인 사건 뉴스에 났을 때, 여자분이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줬다면 아서 플렉이 극단에 몰리는 상황이 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정당방위가 넓게 인정이 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위험에 처한 여성분을 도와 가해자를 때려눕히면 폭행죄로 잡혀 들어갑니다. 피해자 분이 증언을 해 주면 상황이 바뀌겠지만요. 그런데 뉴스에 보면 피해자도 겁이 나서 이은 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것입니다. 내 일이 아니면 도와주지 않는 분위기, 남의 일에 괜히 끼지 않는 것이 그들의 문화입니다. 물론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움받은 사람이 가해자로 도와준 사람을 지목하는 일이 몇 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목격자의 증언과 CCTV 덕분에 어려움에서 벗어난 분들도 있지만, 누명을 쓴 사람도 많았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법도 생겼습니다. 나만이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가 사후 책임까지 지게 된다면, 누가 나서서 도와줄까요? 

 

8. 총기난사 범인: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 총기 소지가 허가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한 후에 총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했겠죠. 2010년에 나온 언 싱 크블이란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테러범에게 핵폭탄의 위치를 알아내야 하는데, 고문 전문가를 불러옵니다. 갖은 고문에도 견뎌 내던 테러범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 앞에 무릎 꿇기 직전, 이를 말리는 사람과 계속하겠다는 고문 전문가의 대립, 결국은... 이건 스포라서 안 적겠습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겼습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대로 정리했는데요. 글을 적고 나니 머리가 한결 개운해집니다. 사회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고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